직장에서 짤릴까봐 막연하게 두려운 그들에게

모멘트가 AI 시대에 현장 전문가의 역할을 돌아본 글입니다. 정보 검색과 정리는 AI가 맡더라도 현장의 예외·위험을 걸러내고 책임지는 판단에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관점을 전합니다.

모멘트운영진 · 투자생각

· 8분 읽기

많은 분들이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AI는 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법령도 더 많이 알고, 판례도 더 빨리 찾고, 논문과 통계도 순식간에 정리한다. 내가 며칠씩 찾아야 할 자료를 몇 분 안에 정리해주는 시대가 됐다.

투놀 스터디에는 굉장히 훌륭한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나랑 비슷한 또래의 훌륭한 직장을 가진분께서도 자기 직업이 대체될까 두려움을 가진다.

이제 40대인데 말이다. 나역시 AI의 발전으로 언제 낙오될지 몰라 AI를 굉장히 많이 활용하는 편이고, 많은 공부를 하곤 한다. 어떻게 하면 안뒤쳐질까, 안짤릴까, 안망할까 생각하는 사람으로써 내린 결론을 공유하고자 한다.

1. AI는 많이 알지만, 많이 안다고 판단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AI의 정보 처리 능력은 이미 사람이 따라가기 어려운 수준이다. 건축법을 찾아달라고 하면 관련 법령을 정리하고, 부동산 경매 사건을 분석하라고 하면 권리관계를 정리한다. 논문을 비교하거나 정책자료를 요약하는 것도 빠르다. 이 영역만 보면 인간 전문가가 불리하다.

과거에는 전문가라는 사람이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었다. 어디에서 자료를 찾아야 하는지 알고 있고, 남들이 모르는 판례나 사례를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차이가 났다. 하지만 이제 이런 정보 격차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좋은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수많은 정보 가운데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AI가 100개의 가능한 방법을 제시한다면, 현장 전문가는 그중 97개를 먼저 버린다. 그리고 남은 3개 가운데 어느 것이 실제로 가능한지를 본다. 결국 지식의 양과 판단력은 완전히 다른 능력이다.

2. 현장 전문가는 ‘되는 방법’보다 ‘하면 안 되는 방법’을 더 많이 안다

경험이 적은 사람은 어떤 일을 볼 때 가장 먼저 묻는다. “이거 가능한가요?” 경험이 많은 사람은 조금 다르다. “이거 어디서 사고가 날 수 있지?”

부동산 경매를 예로 들어보자. 서류상으로는 권리관계에 문제가 없을 수 있다. 대출도 가능해 보이고, 낙찰가도 충분히 싸게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는 명도가 쉽지 않을 수도 있고, 금융기관이 생각보다 대출을 적게 해줄 수도 있다. 건물을 뜯어보니 예상하지 못한 공사비가 나올 수도 있고, 인허가 과정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건축이나 개발은 더 심하다.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것과 실제 사업으로 가능한 것은 전혀 다르다. 담당자의 해석, 지역 분위기, 민원 가능성, 공사비, 금융조건, 시기까지 모두 맞아야 한다. 이런 것들은 법령집에 완벽하게 적혀 있지 않다. 그래서 경험이 쌓일수록 전문가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은 성공한 방법의 숫자가 아니라 실패할 가능성을 빠르게 제거하는 능력이 된다. 돈을 버는 방법을 찾는 것보다 돈을 잃는 방법을 피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경우가 많다.

3. 현장에는 데이터로 기록되지 않는 정보가 너무 많다

AI가 강한 영역은 기본적으로 기록된 세계다. 법령이 기록되어 있고, 판례가 남아 있고, 논문이 존재하고, 거래가격이 데이터로 축적되어 있으면 AI는 굉장히 강해진다.

반대로 현장에서 중요한 정보 중 상당수는 기록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같은 대출이라도 은행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같은 은행이라도 지점이나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같은 건축물이라도 현장 상태를 직접 보면 도면에서는 보이지 않던 문제가 보인다.

같은 명도 사건도 점유자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난이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같은 인허가 문제도 지역과 담당자, 정책 분위기에 따라 실제 진행 속도가 달라진다. 이런 정보는 데이터베이스에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AI는 기록된 세계에서는 압도적으로 강하지만, 기록되지 않은 세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현장은 바로 이 기록되지 않은 정보가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주는 공간이다.

4. 전문가의 직감은 단순한 감이 아니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일한 사람에게 어떤 물건을 보여주면 가끔 이런 말을 한다. “이거 뭔가 이상한데.” 겉으로 보면 근거 없는 감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사람이 10년, 20년 동안 수백 건이나 수천 건의 유사한 상황을 경험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과거에 봤던 수많은 사례가 무의식적으로 비교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문서상 조건은 달라도 구조가 비슷했던 사건, 처음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결국 문제가 터졌던 사건들이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 있다. 그것들이 아주 빠르게 비교되면서 경고 신호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숙련자의 직감은 논리의 반대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경험이 압축되어 있기 때문에 중간 설명 과정이 생략된 판단에 가까운 경우가 있다. 나는 AI보다 많이 알지 못한다. 하지만 AI가 된다고 말하는 것 중에서 왜 하면 안 되는지는 더 많이 알고 있을 수 있다. 그 차이가 현장경험이다.

5. 현장에서는 정답보다 ‘예외’를 찾는 능력이 중요하다

AI가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는 수많은 사례에서 일반적인 패턴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현장에서 큰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은 오히려 평균적인 부분이 아니라 예외적인 부분인 경우가 많다. 경매물건 100개 가운데 99개가 같은 방식으로 처리되더라도, 내가 지금 낙찰받으려는 한 건이 그 1개의 예외라면 평균은 아무 의미가 없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허가가 되는 구조라도 이 대지에 특별한 규제가 하나 걸려 있으면 사업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전문가는 평균적인 조건보다 먼저 묻는다. “이번 건은 뭐가 다른가?” 경험의 핵심은 과거 사례를 많이 외우는 것이 아니다. 과거와 지금이 무엇이 다른지를 알아내는 능력이다.

6. AI가 현장경험을 배우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현장 전문가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AI에게 전부 학습시키면 되지 않을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상당히 어렵다.

우선 전문가 본인조차 자신의 판단과정을 완벽하게 언어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수십 년 동안 쌓인 경험 가운데 무엇 때문에 특정 결론을 내렸는지 하나하나 구조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상황이 매번 다르다는 것이다. 금리가 달라지고, 대출규제가 달라지고, 공사비가 달라지고, 정책이 달라진다. 지역도 다르고 사람도 다르다.

과거에 성공했던 방법이 지금은 실패할 수도 있고, 과거에 불가능했던 방식이 제도 변화로 가능해질 수도 있다. 즉, 현장경험은 단순한 정답 모음이 아니다. 계속 변하는 환경에서 이전 경험을 수정해가는 과정에 가깝다. 그래서 현장 전문가의 암묵지를 완벽한 정답 데이터로 만들어 AI에게 넣는 일 자체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7. 판단력은 실패의 대가를 치르면서 만들어진다

여기에 또 하나 큰 차이가 있다. 현장에서 판단을 잘못하면 실제 대가를 치른다. 투자를 잘못하면 돈을 잃는다. 공사를 잘못 판단하면 추가 공사비가 발생한다. 인허가를 잘못 예상하면 사업이 몇 달씩 지연될 수 있다. 잘못된 판단이 반복되면 평판도 잃는다. 그래서 경험이 쌓일수록 사람의 판단은 달라진다.

현장 고수들이 의외로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험이 적은 사람은 자료 몇 개를 보고 빨리 판단한다.

8. 그래서 AI 시대의 전문가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역할이 바뀐다

앞으로 전문가의 일 가운데 상당 부분은 AI가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자료 검색, 문서 정리, 법령 검색, 사례 비교, 보고서 초안 작성 같은 일은 이미 AI가 상당 부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전문가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가 해야 하는 일이 달라질 가능성이 더 크다. 과거에는 전문가가 자료를 찾고, 정리하고, 분석하고, 판단까지 모두 했다.

앞으로는 자료 수집과 정리는 AI가 상당 부분 맡게 될 것이다. 대신 사람은 검증과 배제, 위험 판단, 최종 선택에 더 집중하게 된다. 특히 돈과 책임이 걸린 영역일수록 이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부동산, 건축, 개발, 투자처럼 하나의 판단 실수가 큰 손실로 이어지는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결국 AI는 전문가를 없애기보다 전문가에게서 단순한 지식노동을 떼어내고 마지막 판단을 더 중요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결국 비싸지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판단’이다

#AI로 일하기#모멘트#투자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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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놀은 2015년부터 경매를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에요. 추천물건을 같이 보고, 임장 가고, 낙찰 뒤 명도까지 같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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